[위클리 리포트] 숏폼이 바꾼 대중음악 흥행 공식
쇼츠-릴스 등 챌린지 영상 화제→차트 진입… 음악 만드는 새 기준으로
낯선 신곡도 바이럴 돼 앨범 기획부터 ‘숏폼 구간’ 설계
가수들끼리 커버 영상 품앗이… 팬덤은 밈-안무 창작
마케팅 과열에 피로감 느끼고 곡 단순화 우려 목소리도

호주 가수 테임 임팔라와 걸그룹 블랙핑크 제니가 함께 부른 ‘드라큘라(Dracula)’는 14일(현지 시간)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에서 5위를 차지했다. 전주보다 세 계단 오른 자체 최고 순위다.
이 곡은 지난해 10월 테임 임팔라의 솔로곡으로 처음 발표됐지만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올 2월 제니가 참여한 리믹스 버전이 공개되고 ‘숏폼 챌린지’가 유행하면서 차트에서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국내외 인플루언서와 연예인들이 노래에 맞춰 걷는 짧은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잇달아 올렸고, 제니가 멧 갈라에서 만난 싱어송라이터 그레이시 에이브럼스와 함께 촬영한 챌린지도 큰 호응을 얻었다. 불과 10초 남짓한 영상이 곡의 차트 성적을 끌어올린 셈이다.
● 낯선 신곡도 밈 하나로 역주행
실제로 발매 직후 멜론 일간 차트 순위도 100위권에 머물렀다. 그러나 예능프로그램 ‘놀라운 토요일’의 MC 붐이 ‘잇츠 미’ 비트에 맞춰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쿵짜작 쿵짝”이란 가사를 절묘하게 부른 숏폼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선배 가수 이정현과 함께한 챌린지 영상과 ‘잇츠 미’의 ‘미’를 쌀 미(米) 자로 풀어낸 광고 콘셉트 숏폼까지 잇달아 화제를 모으면서 음원 순위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16일 기준 ‘잇츠 미’는 멜론 일간 차트 5위에 올라 있다.

이렇다 보니 K팝에서 숏폼은 홍보 수단 중 하나를 넘어 음악을 만드는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연예기획사들은 앨범 기획 단계부터 숏폼에 활용할 노래 구간과 포인트 안무를 전략적으로 설계한다. 짧은 시간 안에 귀를 사로잡는 후렴구와 따라 하기 쉬운 동작, 한 번 들으면 기억에 남는 가사까지 함께 고려한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아이돌들도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콘텐츠 제작에 적극 참여한다.
숏폼 마케팅의 대표 형식인 ‘댄스 챌린지’가 K팝에서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계기는 지코가 2020년 발표한 ‘아무노래’였다. “왜들 그리 다운돼 있어, 뭐가 문제야 세이 섬싱”이란 가사에 맞춰 각자의 개성을 살린 춤을 추는 방식이었다. 지코가 마마무 화사 등과 함께 촬영한 영상이 화제를 모은 데 이어 일반인들까지 안무를 따라 한 영상을 올리면서 인기가 빠르게 확산됐다.

박희아 대중음악평론가는 “신곡이 나오기 전부터 기획사들이 체계적으로 커버 콘텐츠를 준비하고, 음악방송에서 만난 아티스트들이 서로의 챌린지에 참여하는 ‘상부상조’ 문화가 자리 잡았다”며 “접점이 없을 것 같던 아티스트들의 의외의 조합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챌린지 콘텐츠의 재미”라고 했다.
K팝이 숏폼을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안무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장르적 특성이 작용했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K팝은 숏폼이 등장하기 전부터 포인트 안무와 커버댄스 문화가 발달해 있어 챌린지 형식과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다”며 “숏폼이 음악을 발견하고 소비하는 주요 통로가 된 지금, 이러한 강점은 K팝이 세계로 확산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대중과 팬덤의 역할이 단순한 콘텐츠 소비자를 넘어 참여형 창작자로 바뀐 점도 숏폼의 영향력을 키웠다. 팬들은 기획사가 만든 영상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춤을 따라 하거나 새로운 밈을 만든다. 블랙핑크가 올 2월 발표한 세 번째 미니앨범 ‘데드라인(DEADLINE)’의 타이틀곡 ‘고(GO)’는 댄스곡이지만 공식 안무가 없었다. 하지만 팬이 만든 노 젓는 동작의 안무가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자, 로제가 직접 이를 따라 추며 팬의 아이디어에 ‘샤라웃’(shout-out·공개적 언급)하기도 했다.
아이돌이 아닌 국내 인디 밴드가 숏폼을 발판으로 해외에서 먼저 팬덤을 넓히는 사례도 있다. ‘웨이브 투 어스’의 노래들은 공연 영상뿐 아니라 일반 이용자들이 일상을 엮은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활용되며 세계 각국의 소셜미디어에서 확산됐다. 영어 가사와 몽환적인 사운드가 짧은 감성 영상과 어우러지며 해외 청취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발견된 것이다. 이후 스트리밍과 해외 공연으로 팬덤을 넓힌 웨이브 투 어스는 미주와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공연을 매진시키며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큰 대중적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다.
● 팬들이 즐기는 ‘놀거리’ 문화로
최근 숏폼 바이럴은 단순히 안무 영상을 짧게 잘라 올리는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 노래 제목과 가사, 앨범 콘셉트를 캐릭터와 상황극 등으로 변형해 팬들에게 ‘놀거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츠투하츠도 지난달 미니 2집 타이틀곡 ‘레몬탱(Lemon Tang)’ 발매 전후로 멤버들이 레몬을 먹거나 다른 멤버 옆에서 몰래 안무를 추는 등 숏폼 규격에 맞춘 기획 영상을 선보였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누구나 쉽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대중과 팬덤 역시 적극적인 창작자가 됐다. 여기에 최적화된 플랫폼이 숏폼”이라며 “완벽하게 세팅된 연출보다 멤버들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는 직관적인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외 팝 시장에서도 숏폼은 스타를 키우고 오래된 노래를 되살리는 핵심 통로다. 틱톡과 루미네이트가 지난해 2월 발표한 ‘음악 영향력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빌보드 ‘글로벌 200’ 신규 진입곡의 84%는 차트에 오르기 전 틱톡에서 먼저 바이럴됐다.
다만 숏폼 중심의 마케팅이 과열되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곡이 나올 때마다 비슷한 구간을 잘라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챌린지가 쏟아지면서 콘텐츠가 획일화됐다는 지적이다. 음악의 전체적인 구성과 서사보다 몇 초 안에 주목을 끌 수 있는 후렴구나 안무만 강조되면서, 곡 자체가 숏폼에 맞춰 단순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임 평론가는 “숏폼에 맞춰 음악을 만든다고 일률적으로 작품의 질이 높아지거나 낮아진다고 볼 순 없다. 매체가 달라지면 형식도 달라지고, 창작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성공을 만들어 낸다”며 “다만 사람들이 음악을 접하는 방식이 이미 숏폼 중심으로 바뀐 만큼, 짧은 구간에 최적화된 음악과 콘텐츠는 앞으로도 꾸준히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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