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문학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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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덕질하며 성장한 작가 이희주
‘최애의 아이’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아이돌 산업 명암 다룬 작품 잇따라

톱 아이돌이 살해됐다. 머리에 치명상을 입은 채 리프트에서 추락했다.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소민 작가의 신간 소설 ‘아이돌 살인’(엘릭시르)은 이런 장면으로 시작한다. 경찰이 찾은 사건 현장엔 위험할 수 있는 공구들이 널브러져 있다. 급하게 무대를 세우고 부수는 현장 여건상 어쩔 수 없다지만 언제 흉기로 쓰여도 이상하지 않을 것들이다. “아무리 그래도 못까지 박힌 게 아무런 대책 없이 노출되어 있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라는 경찰의 질문에 스태프는 “원칙상으로는 치우는 게 맞는데, 그럴 시간이 없어요”라고 답한다. 여느 산업 재해 현장에서 되풀이됐을 법한 대사와 장면으로 소설은 아이돌 산업의 명암을 드러낸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K팝이 우리 문학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고 있다. 과거 아이돌을 소재로 한 작품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연재되는 팬픽 등 하위 문화에 머물렀던 데 반해 최근에는 위상이 달라졌다. 문단의 주류 작가들도 아이돌 소재의 작품을 연이어 선보이기 시작한 것.

최근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인 작가로는 이희주(33)가 있다. 유년기 HOT, god, 동방신기를 ‘덕질’하며 성장했다는 이희주 작가는 ‘최애’ 스타의 정자를 팬이 공여받으면서 생기는 일을 다룬 단편 ‘최애의 아이’로 올해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K팝 아이돌을 납치하는 내용을 다룬 그의 장편 ‘성소년’은 지난해 해외 판권 계약을 통해 미국 하퍼콜린스, 영국 팬 맥밀런으로부터 각각 1억 원대의 선인세를 받았다. 하퍼콜린스는 ‘성소년’에 대해 “‘버터’(유즈키 아사코)의 어두운 충동과 ‘미저리’(스티븐 킹)의 숨 막히는 긴장감을 결합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K팝 소재 문학은 다양한 관점에서 아이돌 팬덤 문화를 재조명한다. ‘최애의 아이’는 아이돌 팬덤의 부정적 면모를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한 이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대상을 독점하려는 욕망과 일방적 관계에서 비롯된 위계를 드러낸다. 예컨대 소설 속엔 덕질에 많은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최애’에게 자신의 못난 외모를 내보이는 게 두려워 팬 사인회에 응모하지 않는 인물이 등장한다.

스타 외의 존재에게 핀 조명을 비추는 것도 특징이다. ‘아이돌 살인’에는 공황장애 탓에 은퇴한 전직 아이돌, 아이돌이 노래하는 동안 오르내리는 버튼을 눌러주기 위해 리프트에 웅크린 채 탑승하는 스태프 등이 등장한다. 이소민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동경의 대상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때로는 지나친 이상에 잠식되기도 한다”며 “K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실은 폭발하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상태인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성장에만 집중해 성숙하는 길을 볼 수 없게 몰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것이 작가의 문제의식이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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