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발(發) 무역전쟁이 미국과 중국 G2 간의 격돌로 수렴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율 관세 부과에 다른 나라들은 즉각적인 관세 대응을 자제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가장 먼저 보복 관세로 전면전에 나서면서다.
세계의 소비 엔진인 미국과 글로벌 생산 중심지인 중국이 관세 전쟁을 시작하면서 세계 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뉴욕증시 및 유럽증시는 폭락했고, 국제 유가도 주저앉았다.
갑작스러운 증시 붕괴는 금값마저 끌어내렸다. 연이은 주가 폭락으로 유동성이 부족해진 레버리지 투자자들이 금을 팔아 차익실현에 나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중 관세전쟁
트럼프 행정부는 5일(현지시간)부터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의 기본 관세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9일부터는 나라별 상호관세를 부과한다. 가장 높은 세율을 부과한 곳은 역시 중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현재까지 20%의 관세를 부과받았고, 여기에 상호관세 34%까지 더해지면 총 54%의 관세율을 적용받는 셈이다.
중국 정부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4일 미국에 34% 관세를 부과한 데다 희토류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내렸다. 미국 군수 기업 16곳에 대한 이중용도 물품(군수용으로도 민간용으로도 쓸 수 있는 물품) 수출 금지 등도 단행했다.
미국과 중국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닫자 세계 증시는 붕괴했다. 미국 S&P500 지수가 이틀 새 10% 넘게 폭락했고, 뉴욕증시 전체 시가총액 6조 6000억 달러가 공중분해 됐다. 양 국 간의 보복전으로 인플레이션이 다시 불붙고, 교역량 감소로 인한 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져서다. 특히 JP모건체이스의 미국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이클 페롤리는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이 이전 1.3%에서 -0.3%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침체 공포가 확산하면서 국제 유가도 급락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종가는 배럴당 61.99달러로 전장 대비 7.4% 급락했다. 이는 팬데믹 시기인 지난 2021년 4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WTI 가격은 전날에도 6.6%만큼 큰 폭 하락했다. 안전자산으로 투자자들이 몰려들면서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4일 한때 연 3.864%까지 내려앉았다.
유동성 부족으로 금값↓
관세전쟁으로 안전 자산 수요가 커졌지만, 국제 금값은 3% 가까이 급락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금 선물 종가는 온스당 3024.2달러로 전장보다 2.9%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증시 폭락으로 유동성 부족에 직면한 투자자들이 차익실현에 나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레버리지를 활용해 주식 매입에 나섰던 투자자들이 주가 급락으로 마진콜에 직면하면서 금 매도로 화급히 현금 마련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미국 금융산업규제당국(FINRA)에 따르면 2025년 2월 기준으로 뉴욕증시에서 레버리지 규모는 약 9181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4% 증가한 수준이다.
금 수요가 늘면서 독일 정부는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맡겨둔 금 1200t가량을 인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영국의 일간 텔레그래프는 독일 차기 집권 연합의 일원인 기독민주당(CDU) 고위 관계자들은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뒤 미국이 더 이상 신뢰할 만한 파트너가 아니라는 우려에 따라 뉴욕에 있는 독일의 금괴를 인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무역전쟁은 시진핑에 선물”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통화정책 변화를 언급하긴 너무 이르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파월 의장은 이날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열린 콘퍼런스 공개 연설에서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상황이지만, 관세 인상이 예상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며 “경제적 영향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인플레이션 상승과 성장 둔화를 포함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금리 인하를 포함한 통화정책 경로 수정에 대해“통화정책의 적절한 경로가 어떻게 될지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증시가 폭락하는 가운데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금리를 인하하라, 제롬. 정치를 하는 것은 중단하라”라고 말하며 금리 인하를 재차 압박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승자로 부상시키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미국 관세가 시진핑의 날을 만들었다’는 사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글로벌 무역전쟁이 시 주석에게 전략적 선물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각국을 경제적, 전략적 블록으로 묶어 중국을 견제하도록 해온 경제적 끈을 끊어버렸다고 지적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