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 농협법, 밀어붙일수록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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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농축협 조합장과 농민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농협 자율성 수호 농민공동선언식'을 열고 농협 자율성 수호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농협중앙회)전국 농축협 조합장과 농민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농협 자율성 수호 농민공동선언식'을 열고 농협 자율성 수호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농협중앙회)

농협법 개정이 속도를 내고 있다. 당정은 애초 다음 달 지방선거 전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세웠다. 조합원 직선제 도입과 감사위원회 신설이라는 큰 방향도 잡혔다. 남은 건 국회 통과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녹록지 않다. 농민단체 반발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공청회 일정도 밀렸다. 여당 내부에서도 속도 조절 기류가 감지된다. 같은 정책을 두고 정부와 현장이 전혀 다른 온도를 보이고 있다.

농협 개혁 필요성 자체에 대한 공감은 적지 않다. 문제는 추진 방식이다. 제도 설계와 추진 과정에서 현장 반발이 반복되고 있다. 정책 추진 속도와 현장 수용성 사이 간극이 커지면서 농협법 개정은 진통을 겪고 있다. 과거 농정 개혁 과정에서도 정책 취지에 동의하면서 실제 시행 단계에서 충돌이 커진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번에도 비슷한 우려가 이어진다.

직선제를 도입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대표성 강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선거 과열과 정치 개입 가능성도 커진다. 조합장 선거가 지역 정치와 맞물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백억원 규모로 추산되는 선거 비용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부담할지 아직 뚜렷하지 않다. 결국 구조 개편 부담은 다시 조합과 농민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정부도 우려를 알고 있다. 공영제 도입과 회장·조합장 동시선거, 조직 효율화를 통한 비용 절감 방안 등을 내놨다. 방향 자체는 설득력이 있지만, 아직 구상 단계에 가깝다. 제도가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될지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현장이 불안감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다. 세부 시행 방안과 재원 구조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법 일정만 앞서간다는 지적도 있다.

정치 일정 역시 변수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농협법 공청회를 7일에서 12일로 연기했다. 형식상 절차는 유지됐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사실상 속도 조절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같은 날 법안소위와 병행하더라도 밀도 있는 논의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농협은 단순한 공공기관이 아니다. 200만 조합원이 참여하는 거대한 협동조합이다. 경제 조직인 동시에 지역사회 기반 조직이다. 선거제도를 손보는 일 자체가 권력 구조를 다시 짜는 문제와 연결된다. 이런 구조에서 속도만 앞세우면 갈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핵심은 접근 방식이다. 지농협법 개정 논의는 '언제까지 처리할 것인가'에 무게가 실려 있다. 그러나 개혁은 일정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구조와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직선제 도입 여부와 방식, 비용 분담 구조, 선거 관리 체계 등을 각각 분리해 촘촘히 다듬어야 한다. 감사위원회 역시 권한과 독립성을 명확히 해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정부는 “입법 과정에서 보완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입법은 설계의 출발점에 가깝다. 준비되지 않은 제도가 먼저 통과되면 시행 과정에서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정책 신뢰도까지 흔들릴 수 있다.

농협 개혁은 이미 늦은 과제다. 서두른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속도를 높일수록 저항은 커지고 설계가 허술할수록 불신은 쌓일 뿐이다. 지금의 방식은 개혁의 동력을 키우기보다 소모하는 쪽에 가깝다.


브레이크 없는 차는 속도를 낼수록 위험해진다. 지금 농협법 개정이 그렇다. 밀어붙일수록 목표는 가까워지지 않고 오히려 멀어질 수 있다.

[ET시선] 농협법, 밀어붙일수록 멀어진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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