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AI 패권 숨은 동맥 '1.6T 광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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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진 고려오트론 연구소장(이사).윤성진 고려오트론 연구소장(이사).

데이터의 동맥경화. 지금 글로벌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가 직면한 가장 끔찍한 시나리오다. 초거대 인공지능(AI)의 천문학적인 연산량을 기존 400G, 800G 네트워크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통신 인프라 시장은 생존을 위해 1.6테라비트(T)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강제 편입되고 있다.

라이트카운팅을 비롯한 업계 전문가들이 당장 내년부터 1.6T 광트랜시버 및 관련 부품의 폭발적인 볼륨 확장을 예고하는 이유다.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다. 범용 케이블을 붕어빵 찍듯 대량 제조하던 생산 중심의 광통신 산업은 종말을 고했고, 이제는 나노미터(㎚) 단위의 오차와 싸우는 초고정밀 하이테크 산업으로 탈바꿈했다.

결국 승패는 '수율'에서 갈린다. 1.6T 이상의 압도적 대역폭을 병목 현상 없이 처리하려면 한정된 공간 내에서 전송 용량을 극대화하는 고밀도 다심 광케이블 및 다중 광섬유 커넥터(MPO) 기술이 필수적이다.

단일 코어에서 다심 코어로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커넥터 조립 및 연마 공정의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뛴다. 미세한 단차나 스크래치 하나가 치명적인 광신호 간섭과 발열을 야기하고, 이는 데이터센터 셧다운이라는 재앙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정밀 연마 설비와 3D 간섭계를 활용한 극한의 품질 검증 능력을 확보하지 못한 제조사는 도태된다. 빅테크 기업이나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들이 인프라 구축 파트너를 선정할 때, 단가보다는 초정밀 제조 기술력과 수율을 최우선 검토하는 이유다.

글로벌 시장, 특히 북미 지역 인프라 투자 동향은 국내 광통신 업계에 전례 없는 기회이자 위기다. 미국 정부 주도의 광대역 인프라 투자(BEAD) 프로그램에서 광통신은 예산의 약 63%를 차지하는 핵심 축이다. 일각에선 산간 오지 등에 위성통신 망 구축이 유리하다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초저지연과 무한대 대역폭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AI 서비스 품질을 보장할 궁극적 백본은 여전히 광섬유뿐이라는 게 중론이다.

약 58조원이 투입되는 BEAD 프로그램은 매력적인 기회지만, 그 앞을 강력한 자국 우선주의인 '바이 아메리카(BABA)'가 가로막고 있다. 다행히 최근 미국 통신정보관리청(NTIA)이 광커넥터 등 일부 광전자 부품에 예외 조항을 인정하며 숨통이 트였다. 동남아에 거점을 두고 원가 경쟁력을 다져온 우리 기업들이 북미 대형 유통망의 까다로운 진입 조건을 충족할 전략적 틈새가 열렸다.

문제는 이 복잡한 밸류체인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다. 해외에서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 수출하는 과정의 원산지 증명 사각지대는 약 8%에 달하는 수입 관세 폭탄으로 돌아와 현장 이익률을 갉아먹는다. 치밀한 자유무역협정(FTA) 활용과 공급망 최적화 역량이 글로벌 시장 선점의 열쇠다.

유수의 분석 기관들은 AI 데이터센터 구축 지연의 핵심 원인으로 광학 부품의 공급 병목현상을 꼽는다. 글로벌 시장의 심각한 공급 부족이 예견된 지금이 차세대 1.6T 시장을 선점할 유일한 골든타임이다. 이 치열한 전장에 개별 기업들을 맨몸으로 내보내선 안 된다.

중소·중견기업이 독자적으로 감당하기 벅찬 초고가 정밀 제조 및 측정 장비 도입에 대해 정부는 과감한 세제 혜택과 보조금 지원을 선행해야 한다. 동남아 등 글로벌 공급망 관리 다변화를 뒷받침할 촘촘한 관세 행정 및 원산지 증명 컨설팅도 시급하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관내 스마트시티 및 공공망 고도화 사업 시 지역 기업의 차세대 다심 광통신 제품을 우선 도입하여 글로벌 진출의 든든한 테스트베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AI 두뇌가 뛰어나도 데이터를 실어 나르는 신경망이 막히면 국가 산업 전반이 마비된다. 기술 패권 시대, 빛의 속도를 완벽히 제어하는 자가 이 시대의 주인이 된다. 바로 지금이 국가 인프라의 백년대계를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성진 고려오트론 연구소장(이사) rnd@koreaoptr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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