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공시 로드맵 초안 공개...쟁점과 과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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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공시 로드맵 초안과 KSSB 기준이 확정됐다. 초안에서는 공시 대상과 시기, 스코프3 등 쟁점에 대해 판단을 내렸지만 아직 논쟁은 여전하다. 또 언제부터 법정공시로 넘어가느냐도 뜨거운 감자다. 기업은 규모와 역량에 맞는 수준에서 지속가능성 공시를 시작해야 한다.

[한경ESG] 커버 스토리 - 베일 벗은 ESG 공시, 코리아 프리미엄 시동
② 금융위 공시 로드맵 초안 해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4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DB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4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DB

2021년 첫 계획 발표 이후 5년간 정체돼 있던 한국의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 논의가 다시 공식적인 정책 궤도에 올라섰다. 글로벌 기준 미확정, 주요국의 일정 조정, 기업의 준비 여건 등을 이유로 한 차례 연기된 끝에 2026년 2월 25일 마침내 구체적인 로드맵 초안이 공개됐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4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 로드맵 초안을 발표했다. 다음 날인 2월 26일에는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국제회계기준(IFRS) S1(일반)·S2(기후)를 기반으로 한 국내 공시 기준 첫 번째 세트를 최종 확정했다. 공시 기준과 공시 일정, 두 가지 핵심 과제가 이틀 사이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공시 로드맵의 세 가지 쟁점: 대상·시기·스코프 3

로드맵 초안의 핵심은 세 숫자로 압축된다. 2028년, 30조 원, 3년이다. 금융위는 연결자산총액 3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기업을 1차 의무 공시 대상으로 정하고 2028년(FY2027, 2027년 회계기준)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2029년(FY2028)부터는 자산 10조 원 이상으로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예시 형태로 제시했다. 스코프 3 배출량 공시는 인프라 구축 등을 이유로 3년을 유예해 2031년부터 적용한다. 제도 초기에는 한국거래소 공시로 운영하다가 법정 공시로 전환하는 2단계 경로도 담았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1차 대상은 약 58개 사, 코스피 전체의 6.9%에 그친다. 문제는 개수보다 구성이다. 대상 기업의 절반가량이 금융업에 몰린다. 금융업은 자산 특성상 30조 원 기준을 손쉽게 넘지만, 온실가스 직접 배출 규모는 제조업과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정작 직접 배출 비중이 높은 제조·화학·소재 기업 상당수는 초기 대상에서 빠진다. 글로벌 고객사와 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필요한 정보가 가장 늦게 나오는 구조다.

스코프 3도 로드맵의 뜨거운 쟁점이다. 일본이 공시 첫해인 2027년에만 유예를 허용하는 반면, 한국은 의무 공시가 시작되는 2028년 이후 3년을 더 기다려 2031년에야 적용된다. 1차 공시 대상의 절반이 금융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 선명해진다. 금융사의 실질적인 기후 리스크는 대출·투자 포트폴리오를 통한 간접 배출, 즉 스코프 3 카테고리 15에 집중돼 있다. 스코프 3 없는 금융사의 기후 공시는 그 기업의 기후 리스크를 사실상 드러내지 못한다.

국내 의무 공시 여부와 무관하게, 유럽연합 탄소국경제도(EU CBAM) 시행과 글로벌 고객사의 공급망 데이터 요구로 수출 기업들은 이미 스코프 3 준비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예는 제도상의 면제일 뿐,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차피 준비해야 한다면, 기업이 제도 안에서 체계적으로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유예보다 현실적인 답일 수 있다.

공시 기준, KSSB가 확정한 것과 내려놓은 것

2024년 4월 공개초안 발표 이후 약 10개월의 의견수렴 끝에 확정된 KSSB 공시기준은 제1호(지속가능성 관련 재무정보 공시를 위한 일반사항)와 제2호(기후 관련 공시사항) 두 가지다. IFRS S1·S2와의 국제적 정합성을 유지하면서도 국내 시장 현실을 반영해 일부 항목을 유예하거나 완화한 결과물이다.

주목할 점은 공개초안에 포함됐던 제101호(정책 목적을 고려한 추가 공시사항)가 최종안에서 제외됐다는 것이다. 한국의 공시 체계는 기후 중심의 단일 축으로 출발한다. 호주(AASB S2)가 기후 공시만 의무화한 것과 궤를 같이하지만, 지속가능성 전반을 의무 범위에 담은 일본(SSBJ)이나 EU(CSRD·ESRS)와는 출발점이 다르다.

글로벌 시계와의 간극: 국제 정합성이 경쟁력이다

EU의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에 따른 의무 공시는 2025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2년 차에 접어들었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공시 기준을 이미 채택했거나 도입을 공식 선언한 관할권이 40여 개에 달하면서, 지속가능성 정보는 사실상 ‘제2의 재무제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납품하거나 자금을 조달하는 EU·일본·호주 시장은 이미 이 기준으로 공급망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거래소 공시를 법정 공시에 앞서 선행하는 방식도 재고가 필요하다. 공시 정보의 법적 책임 주체가 모호한 과도기 구간이 길어질수록 투자자 보호와 정보 신뢰도 문제는 커진다. 로드맵이 도입하겠다고 밝힌 면책(Safe Harbor)은 법정 공시 체계 안에서만 실질적 의미를 갖는다. 거래소 공시 단계에서 선의로 추정치를 공시했다가 수치가 틀렸을 때 오히려 법적으로 더 불안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반대로 법정 공시로 전환되면, 잘 준비한 기업에게는 글로벌 투자자의 신뢰 회복과 기업가치 제고, 즉 밸류업의 실질적 계기가 될 수 있다. 제도 초기일수록 법적 프레임워크가 명확해야 기업과 시장 모두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움직일 수 있다.

기업의 대응: 인프라 구축이 먼저다

금융위는 3월 31일까지 공개 의견수렴을 거쳐 4월 중 로드맵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로드맵 초안은 아직 확정 전 단계이지만, 공시 의무화의 방향과 속도가 상당 부분 구체화됐다는 점에서 기업의 선제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기후공시 준비는 문서 작성이 아니라 인프라 구축의 문제다. ①이사회·지속가능성·재무 조직을 아우르는 공시 거버넌스 재정립 ②재무적 중요성 기준에 따른 연결 기준 공시 범위 확정 ③스코프 1·2 데이터의 측정 기반과 검증 체계 구축 ④기후 위험이 비용·자산·수익에 미치는 영향을 재무 데이터와 연결하는 재무영향 분석 체계 마련 ⑤‘누가, 언제, 어떤 근거로’ 데이터를 산출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내부통제(ICSR) 체계 정비까지, 각각 수개월에서 1~2년이 소요되는 작업들이다.

다만 호주와 EU의 선행 사례는 첫해 공시가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호주 AASB S2 1차 공시 기업의 3분의 1은 재무적 영향을 정량화하지 못했고, EU CSRD 1차 공시 기업 중 기후 전환계획을 공시한 곳도 55%에 그쳤다. 그럼에도 시장은 멈추지 않았고, 제도는 작동했다. IFRS S1·S2의 비례성 원칙은 기업이 자신의 규모와 역량에 맞는 수준에서 공시를 시작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완벽한 공시보다 중요한 것은 출발이며, 경과조치와 유예는 바로 그 출발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기준은 확정됐다. 이제 속도와 범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가를 변수가 됐다. 지속가능성 공시는 기업가치를 설명하는 언어다. 그 언어를 먼저 익힌 기업이 글로벌 투자자와 고객이 원하는 대화의 주도권을 갖게 되고, 그것이 곧 밸류업을 뒷받침하는 핵심축이 될 것이다.

권미엽 삼일PwC Sustainability Team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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