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오늘, 계급장 뗀 미국 와인은 역사를 다시 썼다 [변원규의 잔 들기 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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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심판

파리의 심판

싸움에서 불리한 쪽. 아무도 이길 거라 기대하지 않는 쪽. 이미 승패가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자리에서, 그래도 끝까지 링 위에 남아 있는 쪽.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이야기에 끌렸다. 돌팔매 하나를 든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장면이 그렇고, 필라델피아의 무명 복서 록키 발보아가 세계 챔피언과 맞서는 장면이 그렇다. 모두가 질 거라고 생각한 싸움. 그런데도 링에 오른 사람. 언더독의 이야기는 늘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영화 <머니볼(Moneyball)>도 그렇다. 예산이 부족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Oakland Athletics)는 뉴욕 양키스 같은 거대 구단과 같은 방식으로 싸울 수 없었다. 그래서 싸우는 방식을 바꿨다. 이름값이나 스카우터의 감이 아니라 출루율과 데이터로 선수를 평가했고, 그 결과 2002년 시즌 20연승이라는 기록을 만들었다. 와인 역사에도 그런 날이 있었다. 바로 50년전 오늘의 이야기다.

1976년 5월 24일, 프랑스 파리

테이블 위에는 와인들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라벨은 보이지 않았다. 병은 가려졌고, 이름은 지워졌고, 남은 것은 잔 안의 향과 맛뿐이었다. 모든 와인이 그렇지는 않지만, 이름 하나만으로도 열 마디 말이 필요 없는 것이 또 와인이다. 샤토(Château, 보르도의 와인 양조장 겸 영지를 가리키는 표현)의 역사, 산지의 명성, 라벨에 적힌 빈티지의 평판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잔에 닿기도 전에 이미 판단을 만든다. 그래서 '라벨을 가린다'는 것은 단순한 시음 방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잠시나마 계급장을 떼고, 오직 와인 그 자체로 겨루자는 선언이었다.

이 자리를 기획한 사람은 파리에서 와인숍과 와인 교육기관을 운영하던 영국인 스티븐 스퍼리어(Steven Spurrier, 1941~2021)였다. 그는 미국 독립 200주년을 계기로 캘리포니아 와인을 소개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 라벨을 가린 채 향과 맛만으로 와인을 평가하는 시음 방식)을 준비했다. 애초의 취지는 거창한 혁명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날의 결과는 세계 와인사의 방향을 바꿨고, 스퍼리어의 이름은 '파리의 심판'을 만든 인물로 남게 됐다.

함께 시음 테이블에 놓인 대상은 내로라하는 프랑스 최고급 와인들이었다. 레드 부문에는 샤토 무통 로칠드(Château Mouton Rothschild), 샤토 오브리옹(Château Haut-Brion), 샤토 몽로즈(Château Montrose) 같은 보르도(Bordeaux) 그랑 크뤼(Grand Cru, 보르도와 부르고뉴 등에서 사용하는 최고급 와인 등급) 와인들이 등장했다. 화이트 부문에는 부르고뉴(Bourgogne)의 이름난 샤르도네(Chardonnay)들이 나왔다. 그 옆에 캘리포니아 와인들이 놓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 유럽의 눈으로 보면 아직 '변방의 와인'이었다.

심사위원은 프랑스 와인 전문가들이었다. 소믈리에, 와인메이커, 평론가, 레스토랑 경영자들이 라벨이 가려진 와인을 마셨다. 그들은 당연히 프랑스 와인이 이길 것이라 생각하며 평가를 진행했다. 스퍼리어 본인도 프랑스의 압승을 예상했다. 무엇보다 이날의 블라인드 시음회가 세계 와인 역사, 아니 미국 와인 역사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먼저 화이트와인이 놓였다. 그리고 이 조용한 테이블 위에서, 작은 균열이 시작됐다. 라벨이 가려지자 심사위원들의 확신은 생각보다 쉽게 흔들렸다. 나파밸리(Napa Valley) 샤르도네를 두고는 프랑스 와인이라 여겼고, 부르고뉴의 바타르-몽라셰(Bâtard-Montrachet)를 두고는 캘리포니아 와인이라고 단정했다.

당시 시음 현장의 유일한 참관 기자였던 조지 M. 테이버(George M. Taber)가 기록한 현장 코멘트에는 그 당황스러운 엇갈림이 그대로 남아 있다. 누군가는 나파밸리 와인을 마시고 "프랑스로 돌아온 듯 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또 다른 이는 부르고뉴 와인을 두고 "향이 없으니 캘리포니아일 것"이라 말했다. 잔 안의 와인은, 그들이 믿고 있던 이름과 자꾸만 어긋났다. 그 순간 라벨은 단순히 가려진 것이 아니었다. 판단을 지배하던 권위가 잠시 멈춘 것이다. 샤토의 역사도, 산지의 명성도, 가격의 무게도 그 자리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남은 것은 향과 맛, 그리고 심사위원들의 점수뿐이었다.

결과는 더 충격적이었다. 화이트 부문 1위는 샤토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 1973 샤르도네였다. 나파밸리 와인이었다. 스티븐 스퍼리어의 기록에 따르면 화이트 부문 상위 5개 와인 중 3개가 캘리포니아 와인이었다. 프랑스가 자랑하던 부르고뉴 화이트의 무대에서, 캘리포니아는 단순한 이변이 아니라 실력으로 존재를 증명한 것이다.

그날의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다

레드야말로 보르도의 자존심이 걸린 무대였다.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오브리옹, 샤토 몽로즈 같은 이름들은 와인 세계에서 계급장 그 자체에 가까웠다. 만약 화이트에서 예상 밖 결과가 나왔다 해도, 레드에서는 프랑스가 다시 질서를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스미소니언에 보관중인 스택스 립 SLV 1973 / 사진=아영FBC

스미소니언에 보관중인 스택스 립 SLV 1973 / 사진=아영FBC

레드 시음 테이블에는 프랑스 보르도 4종과 캘리포니아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6종이 놓였다. 프랑스 쪽에는 보르도의 이름난 그랑 크뤼가 있었고, 캘리포니아 쪽에는 스택스 립 와인 셀라(Stag's Leap Wine Cellars), 리지 빈야드(Ridge Vineyards), 하이츠 셀라(Heitz Cellar), 프리마크 아비(Freemark Abbey) 같은 당시로서는 아직 세계적 명성이 충분히 쌓이지 않은 와이너리들이 있었다.

같은 포도 품종을 중심으로 만든 와인들이었지만, 라벨이 가려진 순간 그 비교는 산지의 명성보다 잔 안의 완성도를 겨루는 싸움이 됐다. 스택스 립 와인 셀라는 당시 레드 부문 출품 와인을 이 같은 순서로 기록하고 있다. 1위가 스택스 립 와인 셀라 1973, 그 뒤를 샤토 무통 로칠드 1970, 샤토 오브리옹 1970, 샤토 몽로즈 1970 등이 이었다.

포도밭 전경 / 사진=아영FBC

포도밭 전경 / 사진=아영FBC

심사위원들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화이트에서 이미 예상 밖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드에서도 결과는 프랑스의 질서로 돌아가지 않았다. 점수표가 모였고 평균이 계산됐다. 그 순간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것은 보르도가 아니었다. 캘리포니아의 스택스 립 와인 셀라의 1973년 S.L.V.(Stag's Leap Vineyard, 와이너리가 1970년 처음 식재한 단일 포도밭 이름의 약자) 카베르네 소비뇽이었다. 스택스 립 와인 셀라 공식 기록에 따르면 이 와인은 샤토 무통 로칠드와 샤토 오브리옹을 앞서 레드 부문 최고 점수를 받았다.

그 장면이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는 결과 발표 이후의 반응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오데트 칸(Odette Kahn)은 자신의 점수지를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지 테이버는 훗날, 그녀가 자신의 점수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과가 단순한 순위 발표를 넘어, 프랑스 와인 전문가들의 확신까지 흔든 사건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수백 년 역사의 프랑스 샤토들이, 이제 막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나파밸리 와인에 밀린 것이다. 그날 스택스 립의 승리는 "좋은 와인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라는 질문 자체를 바꿨다. 오래된 성과 유명한 라벨, 높은 가격만이 품질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새로운 땅과 새로운 생산자도 충분히 세계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을 증명한 한 병이 바로 1973년 S.L.V. 카베르네 소비뇽이었다.

나파밸리의 젊은 와인은 어떻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스택스 립 와인셀라 / 사진=아영FBC

스택스 립 와인셀라 / 사진=아영FBC

스택스 립 와인 셀라의 중심에는 와인메이커 워런 위니아르스키(Warren Winiarski, 1928~2024)가 있었다. 그는 단순히 나파밸리에서 와인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아니었다. 이 지역의 카베르네 소비뇽이 세계 최고 와인들과 겨룰 수 있다고 믿은 사람이었다.

그가 이 지역의 가능성을 믿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위니아르스키는 네이선 페이(Nathan Fay)가 만든 카베르네 소비뇽을 맛보고, 스택스 립 지역이 단순히 힘센 와인이 아니라 우아함과 구조감을 함께 가진 카베르네를 만들 수 있는 땅이라고 보았다. 당시 나파밸리는 지금처럼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전이었고, 스택스 립은 더더욱 검증되지 않은 지역이었다. 하지만 위니아르스키는 그 잔 안에서 가능성을 읽었다. 이름값이 아니라 맛으로 판단한 것이다. 훗날 파리의 심판에서 그의 와인이 라벨을 가린 채 프랑스 최고 와인들을 넘어선 것은, 어쩌면 그가 처음부터 믿었던 방식의 증명이었다.

스택스 립(Stag's Leap)은 직역하면 '수사슴의 도약'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이름이 오래도록 남긴 이미지는 '사슴의 도약'에 가깝다. 나파밸리 동쪽 절벽 지형에는 사냥꾼에게 쫓기던 사슴이 봉우리와 절벽 사이를 뛰어넘어 끝내 붙잡히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도망치는 마지막 몸짓이 아니라, 추격을 벗어나 자신의 길을 찾아낸 결정적인 도약. 스택스 립이라는 이름에는 처음부터 그런 이미지가 담겨 있었다.

이 전설은 1976년 파리에서 현실이 됐다. 모두가 프랑스 와인의 승리를 예상한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스택스 립 와인 셀라의 1973년 카베르네 소비뇽은 보르도 최고급 와인들을 뛰어넘었다. 사슴이 높은 절벽을 뛰어넘었듯이 나파밸리의 와인이 오래된 권위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다.

스택스 립의 와인이 특별했던 이유는 스타일에 있었다. 당시 캘리포니아 와인에 대한 편견은 분명했다. 너무 진하고, 너무 강하고, 세련미가 부족하다는 인식이었다. 하지만 스택스 립의 카베르네는 달랐다. 힘은 있었지만 거칠지 않았고, 과실미는 풍성했지만 구조감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부드러움과 힘, 풍성함과 절제가 함께 있었다.

스택스 립 와인셀라 1973 빈티지 / 사진=아영FBC

스택스 립 와인셀라 1973 빈티지 / 사진=아영FBC

훗날 스택스 립 와인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벨벳 장갑 속의 철권(an iron fist in a velvet glove)'. 겉으로는 매끄럽고 우아하지만, 그 안에는 단단한 힘이 있다는 뜻이다. 바로 이 균형감이 스택스 립을 단순한 나파밸리 와인이 아니라, 보르도 최고급 와인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겨룰 수 있는 와인으로 만들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와인이 오래된 전통의 산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1973년 S.L.V. 카베르네 소비뇽은 스택스 립 와인 셀라의 초기 빈티지(와이너리의 첫 빈티지는 1972년, 1973년은 두 번째 빈티지)였다. 다시 말해 수백 년 된 보르도 샤토들을 이긴 것은, 이미 완성된 전설이 아니라 막 자신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와인이었다.

그날 현장에는 타임지 기자 조지 테이버가 있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와인업계의 작은 해프닝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기사를 통해 이 이야기는 미국으로 건너갔고, 곧 캘리포니아 와인의 운명을 바꾸는 상징이 됐다.

워런 위니아르스키는 그 승리를 단발성 사건으로 소비하지 않았다. 1976년 이후 미국 와인업계가 환호에 들떠 있을 때도, 그는 "우리가 프랑스를 이겼다"는 구호보다 포도밭을 먼저 보았다. 한 번의 승리가 와이너리의 전부가 될 수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다음 빈티지였고, 그다음 세대의 와인이었다.

스택스 립 CASK / 사진=아영FBC

스택스 립 CASK / 사진=아영FBC

그는 스택스 립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지 않았다. S.L.V.와 FAY(1986년 인수한 인접 포도밭으로, 네이선 페이가 1961년 스택스 립 지역에 카베르네 소비뇽을 처음 심은 자리)라는 두 포도밭은 스택스 립 와인 셀라의 중심이 됐고, 두 포도밭의 개성이 훗날 CASK 23(SLV와 FAY의 베스트 로트를 모은 와이너리 최상위 라인)으로 이어졌다. 파리의 심판은 스택스 립을 세계 무대 위에 올려놓은 출발점이었지만, 그 이후의 시간은 스스로를 계속 증명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스택스 립 아르테미스 2022 / 사진=아영FBC

스택스 립 아르테미스 2022 / 사진=아영FBC

여기서 아르테미스(Artemis, 그리스 신화 속 사냥의 여신)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아르테미스는 스택스 립 와인 셀라의 나파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S.L.V.처럼 파리의 심판에서 직접 우승한 와인은 아니다. 하지만 스택스 립이라는 이름을 글라스 한잔에서 가장 넓게 만나게 해주는 와인이다. 전설이 된 한 병의 이야기를 특정 빈티지의 기억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지금의 소비자가 마실 수 있는 '살아있는 전설'과 같은 와인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아르테미스는 과거의 영광을 반복하는 와인이라기보다, 그 이후의 시간을 보여주는 와인에 가깝다. 파리의 심판이라는 극적인 승리가 있었다고 해도, 잔 안에서 설득하지 못하면 이야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좋은 와인은 결국 다시 평가받는다. 라벨이 주는 기대를 지나, 향과 맛으로 다시 한 번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스택스 립 아르테미스의 첫 모금은 그래서 단순한 나파 카베르네의 풍성함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짙은 과실미, 촘촘한 타닌, 부드러운 질감, 긴 여운 속에는 라벨을 가린 채 세계의 기준을 흔들었던 하루가 있고, 그 하루 이후에도 포도밭과 빈티지에 집중해온 시간이 있다. 승리의 기억보다 중요한 것은, 그 승리를 계속 이어가려는 태도다.

스택스 립 SLV 1973 파리의심판

스택스 립 SLV 1973 파리의심판

2026년은 파리의 심판 50주년이 되는 해다. 반세기가 지났지만 이 이야기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이변의 기록이 아니기 때문이다. 1976년 파리에서 벌어진 일은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이겼다"는 승패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좋은 와인의 기준이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 누가 그 기준을 정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언더독의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하지만 진짜 오래 남는 언더독 스토리는 단지 약자가 강자를 이겼다는 결말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승리가 새로운 기준을 만들 때, 그 이야기는 하나의 상징이 된다. 스택스 립의 승리가 그랬다. 나파밸리는 더 이상 변방이 아니었고, 미국 와인은 더 이상 프랑스를 따라잡아야 할 후발주자만이 아니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와 겨룰 수 있는 와인이었다. 계급장을 뗀 날, 미국 와인은 역사를 다시 썼다. 그리고 그 역사는 아직 잔 안에서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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