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교포들은 광주에서 학살이 일어났다는 기사를 접하고 울분을 터뜨렸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항쟁 기간이었던 1980년 5월 26일 미국 시카고에서는 오월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첫 집회가 열렸다. 유학생과 교포 600여명은 이날 시카고 시내 알바니 공원에 모여 오월 진실 규명을 요구하며 “전두환은 사임하라”는 첫 목소리를 냈다.
시카고가 한국보다 시차가 14시간 늦은 것은 감안하면 오월 진상 규명 첫 외침이 울려 퍼질 시각에 신군부는 시민 최후 항쟁지인 전남도청 유혈진압을 강행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고재대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은 “시카고 교포들이 5·18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첫 집회를 열고 고립무원 광주에 따뜻한 연대의 손을 내밀었다”고 말했다.
광주의 참상이 미국에 빠르게 알려진 것은 언론, 종교, 봉사단체 등의 노력 덕분이었다. 5·18에 공헌한 광주 명예시민 9명 중 4명은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다. 이들 4명은 미국인 3명, 독일인 1명이다.데이비드 돌린저 씨는 14일 9번째 5·18관련 광주명예시민이 됐다. 그는 5·18당시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전남 영암보건소에서 근무하며 광주에서 시민군으로 활동했다. 5·18시민군 대변인 고 윤상원 열사의 외신 기자회견 통역을 맡아 오월 진실을 세계에 알렸다.
또 다른 명예시민은 5·18 당시 수녀기도모임을 주도한 미국인 고 문말린 수녀다, 5·18을 세계 44개 대학에 알린 탐사보도 전문기자 미국인 팀 셔록과 ‘푸른 눈의 목격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고 위르겐 힌츠페터 독일 기자도 명예시민이다.
광주 참상을 신속한 접한 재미 교포들은 5·18직후 잇따라 신군부를 규탄하는 집회에 나섰다. 이때 오월 진실을 알리기 위해 결성된 단체가 호남향우회다. 200만 호남향우회 회원들은 5·18세계화의 일등공신이다.이어 시카고에서는 1985년부터 2년 동안 5·18기념사업 및 위령탑 건립운동을 펼쳐 성금을 모금해 전달했다. 1986년 캘리포니아 버클리시에서는 5월 10일을 광주의 날로 선포하고 선언문을 발표했다.
5·18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해외 동포들 상당수가 오월 진상규명 운동에 참여했다. 동포들은 이명박 정부 당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리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취소하는 등 논란이 불거지자 적극 대응했다.
동포들은 2012년 세계 40여 곳에서 5·18기념식을 개최하며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22년부터 매년 5월 18일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로 제정했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해외에서 기념일로 제정된 건 첫 사례다.
미국 교포들은 45년 동안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18일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한인단체들이 연합해 제 45주년 5·18 기념식 4개를 개최한다. 김철웅 로스앤젤레스 5·18기념사업회 회장(68)은 5·18 정신계승과 세계화에 힘쓰고 있다.
김 회장은 “전두환 정권과 윤석열 정권 때 위법한 비상계엄이 반복됐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오월 정신은 현재에도 필요한 시대정신”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항상 시민정신이 깨어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올해 5·18기념식은 교포들이 참여한 가운데 세계 30여 곳에서 열린다. 미국에서는 5·18기념식이 18곳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처럼 미국 교포들이 오월 정신을 계승하고 세계화하는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정광일 재외국민유권자연대 공동대표는 “미국 사람들도 5·18을 세계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평가한다. 미얀마 등에서는 5·18을 민주주의 발전 모델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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