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1980~1990년대 PC 게임 잡지에 동봉된 플로피 디스크(초기 컴퓨터에서 사용하던 저장장치)는 소년들의 가슴을 뛰게 하던 작은 선물이었다. 잡지가 발간될 때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된 플로피 디스크는 서고 한편에 쌓여 어느새 4000여 점에 이르렀다.
이 아날로그 유산을 눈여겨본 이는 대학에서 IT·전산을 전공한 이연수(46) 학예연구사였다. 학창 시절 취미로 게임을 만들기도 했던 그는 초기 국산 게임들이 이대로 묻히는 것이 안타까웠다. 결국 국산 게임을 주제로 한 전시를 기획했고, 서고에 잠들어 있던 옛 게임들은 30여 년 만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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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연수 학예연구사가 AI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복원한 게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이윤정 기자). |
국립중앙도서관은 오는 12월 31일까지 디지털도서관에서 한국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조명하는 특별전 ‘단종 한국 게임, 다시 켜다’를 선보인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한 한국 게임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한때 개발·유통됐으나 지금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단종 게임과 미발매 게임의 기록을 소개하는 전시다. 1980년대 초부터 수집·보존해 온 게임 잡지 4종과 매뉴얼 6권, 플로피 디스크 게임 3점 등을 만나볼 수 있다.
15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만난 이연수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의 콘셉트는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라며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한 플로피 디스크 매체를 공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도서관, 게임을 수집하다 △책장 너머의 게임들 △한국 게임의 시간여행 △게임을 지키는 사람들 △다시 켜는 한국 게임 등 5개 영역으로 구성됐다. 이 학예사는 “단순히 미발매 게임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흥미로운 사연이 담긴 게임들을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서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게임들의 뒷이야기도 확인할 수 있다. 1993년 게임 잡지 ‘게임챔프’에는 인기 만화 ‘핑핑참깨’를 원작으로 한 PC 게임 ‘참깨핑핑’이 개발 중이라는 소식이 실렸지만 끝내 출시되지 않았다. 이후 이 게임은 개발 방향을 바꿔 ‘원시소년 토시’라는 이름으로 선보였다. 격투 게임 ‘승천대한’도 잡지에서 개발 진척도가 70%에 이른 것으로 소개되며 기대를 모았지만, 끝내 완성되지 못한 채 미발매 게임으로 남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슈팅 게임 ‘그날이 오면’이다. 1990년대 게임 잡지 광고까지 등장했지만 끝내 출시되지 못했다. 이 학예사는 인공지능(AI) 프로그램과 게임 개발 엔진 ‘고도’(Godot)를 활용해 약 3개월에 걸쳐 이 게임을 플레이 가능한 형태로 재현했다. 당시 자료를 토대로 보스 드래곤 캐릭터를 복원했고, 국립중앙도서관 마스코트 ‘부키’와 ‘투미’를 주인공으로 재해석해 게임을 새롭게 완성했다.
이 학예사는 “국내 첫 FPS(1인칭 슈팅 게임)인 ‘초롱이의 대모험’과 미출시작 ‘그날이 오면’ 등 2종을 현대 기술로 다시 구현했다”며 “과거 게임을 즐겼던 세대가 가족과 함께 도서관을 찾아 추억을 되새기고, 자녀들에게 당시 게임 문화를 소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국산 게임 보존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 학예사는 “게임은 한 세대의 놀이 문화인 동시에 당시의 기술과 상상력이 담긴 기록유산”이라며 “국산 게임이 잊히기 전에 보존 노력을 이어가고, 게임을 오프라인에서 직접 열람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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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이 오면’ 게임 복원을 위한 이미지 작업(사진=이연수 학예연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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