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억 전기요금 인상 날벼락…국회 달려온 CEO 속사정

2 days ago 5

[에너지와 미래]⑪산업용 전기요금 충격
현장 기업인 “전기요금, 제조업 생존 위협”
3년새 7번·80% 인상, 美·中 해외보다 비싸
이대로면 제조업 해외 유출, 일자리 충격 ↑
미래 신재생 중요하지만 제조업 현실 살펴야

  • 등록 2025-10-05 오전 11:15:43

    수정 2025-10-05 오전 11:15:43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2년 전보다 전기요금이 2000억원 더 지출됐습니다…굉장히 힘듭니다.”

지난달 2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토론회에서 김명현 HD현대애앤에프 대표이사 겸 HD현대오일뱅크 기술부문장 전무가 직접 전기요금 현실을 호소했습니다. 제조업 현장의 목소리가 국회 공개 토론회에서 터져 나온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김 대표는 ‘현장파’ 기업인으로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HD현대오일뱅크에 입사해 충남 서산 공장에서 줄곧 일해왔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오래 근무한 그는 현장에서 체감하는 전기요금 인상 충격의 실태를 이날 조목조목 설명했습니다.

김 대표는 “최근 2년간 전기요금은 평균 30~40% 인상됐는데 산업용은 70% 이상 인상됐다”며 “이 결과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전기요금이 2년 전보다 2000억원 더 많은 5500억원을, LG화학(051910)은 2년 전보다 6000억원을 더 지불해 1조3000억원을 지출했다”고 전했습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추석 연휴 이후 본격적으로 신재생 확대 등 에너지 전환에 나설 방침이다. 사진은 김 장관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특히 김 대표는 석유화학 업계, 지방 중소기업에 전기요금 인상 충격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HD현대케미칼은 석유화학 시황이 안 좋아서 적자를 봤는데 전기요금 인상분만 1000억원 이상”이라며 “석유화학 생산 경쟁력, 영업이익에 전기요금이 압도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대표는 “서산 지역에는 중소기업까지 포함해서 30~40개 기업들이 있고 이들 기업의 상황을 들어봤다”며 “이들 기업을 비롯해 우리나라 대부분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이 2~3%밖에 안 되고 제조원가에 에너지 비용이 60% 이상이다. 전기요금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부 차원의 다양한 지원책이 논의되고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효과는 부족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실제로 산업계 특히 제조업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면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이 크다”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 연구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요금은 원가를 뛰어넘어 세계 최고 수준까지 오른 상황입니다.

(자료=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

최근 3년간 산업용(을) 전기요금은 총 7회 인상됐습니다. 2022년 1분기 105.5원/kWh에서 작년 4분기 185.5원/kWh로 80%나 상승했습니다. 이는 같은 기간에 주택용이 31.4%, 일반용이 36.9% 오른 것보다 높은 상승률이죠. 작년 10월 산업용 전기요금이 9.7% 인상되면서 20대 법인이 부담해야 할 전기요금만 1조2000억원 증가했습니다.

이 결과 산업용 전기요금의 원가 회수율은 100%를 초과해 원가보다 높아진 상황입니다. 전기요금 용도별로 비교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주택용 전기요금보다 높은 상황입니다. 국제 비교를 해보면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미국·중국의 산업용 요금을 뛰어넘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인 프랑스 수준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자료=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

그렇다고 해외에 비해 산업용 전기요금에 대한 지원이 충분한 것도 아닙니다. 독일은 2023년 11월에 최대 280억 유로의 전기요금 보조금을 도입했습니다. 영국은 전력 다소비 기업 전기요금을 최대 25% 인하하는 방안을 2027년부터 시행합니다. 중국은 올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최대 16% 인하했습니다. 이는 자국의 제조업을 보호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기업들이 엄살을 피우는 건 아니냐”, “전기요금도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은 망하는 게 낫다”는 반론도 제기됩니다. 새정부가 신재생 확대 속도전에 나선 만큼 전반적인 요금을 올려 신산업을 살리고 시장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이미 한전의 적자와 부채가 심각한 상태인데, 산업용 전기요금을 낮추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되고요. 지금 요금을 낮출수록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지요. 한전의 적자는 2분기 말 기준 28조8000억원, 부채는 206조2000억원에 달합니다.

하지만 걱정되는 건 우리나라 산업의 근간인 제조업의 경쟁력이 훼손됐을 때 당장 나타날 부작용입니다. 유 교수는 “해외와 달리 별다른 보조금이 없는 상황에서 이대로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면 기업들은 생산을 줄이거나 오프쇼오링을 할 것”이라며 “전체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은 줄지 않으면서 우리나라 일자리만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오프쇼오링(Offshoring) 즉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로 떠난다는 것입니다.

(자료=국가데이터처)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가 지난달 10일 발표한 ‘8월 고용동향(이하 전년동월 대비)’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6만6000명 늘었지만 제조업 취업자는 6만1000명 줄었습니다. 14개월째 감소 상황입니다. 15~29세 청년층 취업자는 21만9000명 줄었습니다. 고용률에서도 청년층은 16개월째 하락 상황입니다. 일도 구직도 하지 않는 ‘쉬었음’ 인구는 30대가 32만8000명으로 8월 기준 역대 최대 규모였습니다. 제조업과 청년층 고용이 심각한 상황인 셈입니다.

지난 1일 출범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추석 연휴 이후 본격적인 신재생 속보전에 나설 방침입니다. 미래를 위해 깨끗하고 안전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미래 비전 못지않게 ‘현실의 고통’도 함께 봤으면 합니다. △지역별 차등요금제 시행 △산업용 요금 인하 또는 추가 인상 △산업용 전력에 대해 전력산업기반기급 부담금 요율을 한시적으로 추가 1%포인트 인하 △분산에너지 특구 지정 확대 등의 전문가 제언도 살펴봤으면 합니다. 에너지 전환이 중대한 과제인 건 맞지만, 제조업 현장에서 지금 겪고 있는 생존의 문제 역시 엄중하게 고려했으면 합니다.

*에너지와 미래=에너지 이슈 이면을 분석하고 국민을 위한 미래 에너지 정책을 모색해 봅니다. 매주 주말에 연재합니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