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연극으로 만나는 ‘지킬 앤 하이드’
다섯 인물의 감정 변화무쌍 고난도 연기
“선악 넘어 우리를 돌아보는 거울 됐으면”
23일 찾은 무대는 강렬한 음악, 화려한 스펙터클이 있는 뮤지컬과 완전히 달랐다. 무대 위에는 오래된 문과 테이블, 모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출연 배우도 단 한 명인 ‘1인극’이다. 지킬 박사의 변호사인 어터슨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배우 1명이 어터슨부터 지킬, 래니언 박사, 풀, 그리고 하이드까지 홀로 연기한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젠더 프리’ 캐스팅을 한 점도 눈에 띈다.
이날 공연은 배우 최정원이 19세기 영국 신사처럼 슈트를 차려입고 열연을 펼쳤다. 내적 갈등을 겪는 어터슨의 심리, 코믹한 캐릭터의 래니언 박사, 미스터리한 인물인 지킬 박사 등 인물에 따라 목소리나 자세, 말투를 한 장면에서도 순식간에 전환하는 고난도 연기를 보여줬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은 조명과 음향이다. 모든 이야기가 배우의 ‘말’로 묘사되다 보니 조명과 음향의 변화로 관객의 상상을 돕는다. 이를테면 에드워드 하이드가 어두운 골목길을 걷다 부딪친 소녀를 폭행한 사건을 설명할 때, 무대 좌우에서 비치던 조명이 점점 가까워지고 양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두 사람이 걸어오는 모습을 자연스레 상상하게끔 한다.또 2명 이상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장면은 빈 무대 위에 동그랗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거나, 배우가 빈 모자를 허공에 띄워 마치 다른 사람이 있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덕분에 관객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스터리한 존재, ‘하이드’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심리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
연극 ‘지킬 앤 하이드’는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활동하는 작가 겸 배우 게리 맥네어가 1인극으로 각색한 작품. 지난해 1월 에든버러에서 첫선을 보였다. 원작 소설은 어터슨의 이야기, 래니언 박사의 수기, 지킬 박사의 수기가 차례로 이어지는 구성이지만 이 연극은 어터슨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의 국내 초연을 맡은 이준우 연출은 “지킬과 하이드의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해서 인간이 가진 양면성과 감정의 진폭을 관객에게 전하고 싶다”며 “이 작품이 단순한 선악의 대립을 넘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돌아보는 거울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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