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 졸속 추경 심사
과방위, 복잡한 R&D 사업
2시간만에 5371억 증액 처리
정부가 편성해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 심의를 거치며 졸속 예산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상임위원회 단계에서 각종 지역 사업이 무더기로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미 상임위에서 증액한 예산만 1조4000억원에 가깝다.
정부는 산불과 통상, 인공지능(AI), 민생 등 조속한 지원이 필요한 사업 예산만 담았다는 의미에서 이번 추경을 ‘필수추경’으로 명명했다. 국회에서 증액 요구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뜻도 밝혔는데 경기 경착륙을 막기 위해선 추경 처리 속도가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민생 예산 위주로 일부 늘어나는 건 재정 상황을 고려해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상임위 심사가 다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지나치게 많은 선심성 사업이 추가되고 있다. 사업이 많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에서도 대규모 지역 사업 예산이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28일 국회 각 상임위 예비심사 보고서와 속기록을 분석한 결과, 현재까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에서 대규모 선심성 사업 증액이 이뤄졌다.
농해수위에서는 정부안에 없던 농사용 전기요금 인상 차액보전, 양식어업인 전기요금 인상 차액보전, 도축장 전기요금 특별지원 등이 예비심사 과정에서 면밀한 심사 없이 대거 증액됐다.
지난 24일 열린 농해수위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는 오전 11시 1분에 개의해 오후 2시 44분에 끝났다. 불과 3시간43분 만에 7388억원을 증액하기로 결정했다. 세출 감액은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1분에 33억원씩 증액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광양항 재개발 연결도로 건설 사업 예산은 107억원 증액되고, 제주 해양레저관광거점 사업 예산은 20억원 늘었다. 또 부산 영도 해양치유센터 건립 사업 예산은 20억원 늘었으며 전남 목포에 수산식품 수출단지를 건설하는 사업 예산도 101억원 증액됐다. 경남 통영에 수산식품클러스터를 조성하기 위한 설계 예산도 13억원이 새로 담겼다.
과방위에서도 24일 소위 심사를 단 하루만 하고 5371억원을 증액했다. 과방위 예결소위는 오전 10시 53분에 개의해 오후 1시 2분에 마쳤다. 1분당 41억원 증액한 셈이다. 과방위 사업은 연구개발(R&D)이 많아 전문적인 심사가 필요한데도 의원들은 불과 2시간여 만에 5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뚝딱 증액했다.
28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주장대로 추경 규모를 늘릴 경우 신용평가사들의 평가가 부정적일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은 최 부총리를 향해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추경 규모를 15조원이나 20조원 증액할 수 있냐”고 물었다. 최 부총리는 “추경은 규모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면서도 “(규모를 늘릴 경우) 우리 국채 시장이나 재정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아마 신용평가사들의 평가가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박정 예결특위 위원장은 “그동안 30조원 이상의 추경을 얘기해왔는데 고작 12조원에 불과하다”며 “12조원 추경으로 역성장 흐름을 전환시킬 수 있는 물꼬라도 틀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략적 산업 육성을 위해 인공지능 예산은 들어가 있는데 그 규모가 2조원에 불과하다”며 “미국과 중국은 8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하는데 우리 투자액은 이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면서 증액 가능성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