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또는 2000년이냐, 아니면 1996년이 될 것인가.”
지난 2일 투자은행(IB) 도이치뱅크의 전략분석가 짐 리드가 쓴 보고서 제목이다. 리드는 인공지능(AI) 투자가 주식 급등을 이끄는 현 상황을 닷컴 활황이 최고조에 달한 1999년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그러고선 버블이 붕괴한 2000년 또는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 같은 폭락장이 올지, 아니면 앨런 그린스펀 당시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비이성적 과열’을 경고했지만 상승장이 이어진 1996년과 비슷한 흐름을 보일지 의문을 던졌다.
수치만 놓고 보면 1996년을 가리킨다는 평가가 시장에 많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2025~2030년 미국 4대 빅테크의 투자(CAPEX) 전망치를 기존 4조5000억달러에서 5조3000억달러(약 8100조원)로 올려 잡고 “데이터센터 투자가 다양한 인프라 영역에 영향을 주며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저에는 거품 붕괴 공포가 만만치 않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작년부터 이어진 호황기에 월가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이 <1929년>이라고 3일 보도했다. 이 책은 탐욕과 낙관론에 사로잡혀 역사적 거품을 방관한 1929년 대공황에서 교훈과 통찰력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이코노미스트는 인류의 실존적 위협 돌파구로 ‘화성 이주’를 내세운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창업자, AI의 파괴적 보안 위협을 얘기하며 해결사를 자처하는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최고경영자(CEO)를 ‘종말론적 세계관을 지닌 예언자’라고 평가했다. 이들에 대해 “시장 붕괴가 임박하자 기업공개(IPO)를 서두르고 있다”고 했다.
도이치뱅크 보고서도 역사적 사례를 들며 거품 붕괴를 경계한다. 4~5월 미국 S&P500지수는 약 16% 올랐는데, 2차 세계대전 이후 경기 회복기가 아닌 상황에서 2개월 상승률이 이 수준을 기록한 건 1987년 블랙먼데이 직전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도 “기업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과 엘리트층의 종말론적 이상주의가 결합한 경제는 폭발할 위험이 크다”고 진단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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