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조각[이은화의 미술시간]〈319〉

1 week ago 3

길버트와 조지는 영국의 대표하는 아티스트 듀오다. 두 사람은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반세기 넘게 해왔다. 이들에게 명성을 안겨준 첫 작품은 ‘노래하는 조각’(1969년·사진)이다. 스스로 살아 있는 조각을 자처한 퍼포먼스다. 이들은 왜 예술가가 아닌 예술작품이 되려고 했을까?

길버트 프로에시는 1943년 이탈리아에서, 조지 패스모어는 1942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은 각자 미술 공부를 한 후 1967년 9월 25일, 런던의 미술 명문 세인트 마틴 미술학교에서 운명적으로 처음 만났다. 둘 다 조각 전공 학생이었다. 이들이 친해진 이유는 이탈리아에서 온 길버트의 서툰 영어를 조지만이 알아들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첫 만남 이후 60년 가까이 아티스트 듀오로 살아온 이들은 여느 금실 좋은 부부처럼 항상 사이좋게 붙어 다닌다. 밥을 먹을 때도 산책할 때도 전시장에서도 심지어 작품 속에서도 늘 함께 있다.

‘노래하는 조각’은 두 사람의 첫 공동 작품이었다. 돈도 화상도 후원자도 없던 이들이 가진 건 몸뚱이와 ‘똘끼’뿐. 자신들의 손과 얼굴에 금속성 페인트를 칠하고 영국 신사를 상징하는 정장 차림으로 테이블 위에 올라서서 태엽 인형처럼 몸을 움직이며 무표정한 얼굴로 ‘아치 아래에서’라는 유행가를 흥얼거리는 퍼포먼스였다. 가난한 미대 졸업생이었던 두 사람에게 세상에서 믿고 의지할 곳은 서로의 몸뿐이라는 처절한 각성에서 나온 작품이었다.

퍼포먼스뿐 아니라 이후 이어지는 격자형 사진 작업에서도 작가들의 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작품 속에서 듀오는 반듯한 정장 차림일 때가 많지만 때로는 파격적인 누드로 등장해 거리의 풍경이나 종교적 도상 또는 체액이나 배설물을 확대한 이미지와 겹쳐진다. 또 동성애 커플인 자신들의 삶 자체도 예술화한다. 이들에겐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기 때문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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